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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무 속의 방 |
그는 슬픔이 많은 내게
나무 속의 방 한 칸 지어주겠다 말했었네
가을 물색 붉고 고운 오동나무 속에
아무도 모르게
방 한 칸 들이어 같이 살자 말했었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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은행나무에게 과거를 묻다 |
앞 가로변
은행나무 한 그루가 고아처럼 자라고 있다
깨어진 보도블록을 사이에 둔 새마을전파상에서는
슈베르트의 송어가 느릿하게 유영하고 있다
가끔은 지느러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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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요로의 초대 |
잔디는 그냥 밟고 마당으로 들어오세요 열쇠는 현관문 손잡이 위쪽
담쟁이넝쿨로 덮인 돌벽 틈새를 더듬어 보시구요
키를 꽂기 전 조그맣게 노크하셔야 합니다
적막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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갈대 |
어머니가 개밥을 들고 나오면
마당의 개들이 일제히 꼬리를 치기 시작했다
살랑살랑살랑
고개를 처박고
텁텁텁, 다투어 밥을 먹는 짐승의 소리가 마른 뿌리 쪽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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욕타임 |
오천 평 농장일도 척척
중증 치매환자인 시아버지 병수발도 척척
종갓집 외며느리 역할도 척척인 여자가 있다
곱상한 외모와 왜소한 체구만 보면
손끝에 물 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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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제08-c13 |
사각의 틀에 가두어 키를 키우던 토끼가
사각의 틀을 깨고 나와 남새밭을 휘젓고 있다고
둥근 콩잎의 초록빛을 모조리 뜯어 먹는다고
콩밭 주인 할머니가 전화통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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추코트카반도에서 부르는 연가 |
시월은 가장 쓸쓸한 달,
그대가 만약 추코트카반도에 가게 된다면
그건 베링해의 우울한 샹송을 가슴으로 듣는 기회가 될 거예요.
순록들은 두툼한 고요를 몸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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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나무들과 함께 있을 때 |
내가 숲 속에 있을 때
특히 버드나무, 주엽
그리고 너도밤나무, 참나무 소나무들이
은밀한 즐거움을 내뿜어주는 것을 느낀다.
그들이 나를, 날마다, 구원한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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악어핸드백 |
지하철 출근길
맞은편에 앉은 여자가 핸드백을 열고 화장을 한다
새끼 누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
장정에 오른 누 떼의 헐거운 발굽이
탯줄 같은 상형문을 마른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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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|
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
시골 버스를 탄다
시골 버스에서는
사람 냄새가 난다.
황토흙 얼굴의 농부들이
아픈 소는 다 나았느냐고
소의 안부를 묻기도 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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