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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|
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
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
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
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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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포도 |
내 고장 칠월은
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
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 주저리 열리고
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
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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낮 |
너의 주위는 몇 개의 눈동자가 숨어 있는 떨기나무 같은 것, 가시
들은 눈동자의 것, 덤불의 것.
너의 주위는 밝다.
하루 종일 불을 켜두었다. 시간은 인공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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먼 산 |
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이요
꽃 피고 잎 피는 그런 산이 아니라
산국 피고 단풍 물든 그런 산이 아니라
그냥 먼 산이요
꽃이 피는지 단풍 지는지
당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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강 |
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, 얼마나 괴로운지
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
나에게 토로하지 마라
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
찬장의 거미줄에 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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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정해역 |
여자하고 남자하고
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
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하고
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
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
너무 맑아서
바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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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간이여, 너는 |
시간이여
너는 언제나 이겨나간다
바닷물 흐름이 불상을 삼키고
모래흐름이 경전을 삼켜도
시간이여
지혜를 빼앗아
보물을 훔쳐가고
인간이 모든 영위를
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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'하물며’ 라는 말 |
하물며라는 말이여, 참으로 아름답도다.
그 말에는
슬픔 가득한 서광의 눈동자가 들어 있고
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
다시 한 번 돌아다보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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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일 |
그 여름 밤 길
수풀 헤치며 듣던
어질머리 풀냄새 벌레소릴
발목에 와 서걱이던 이슬방울 그리워요
우리는 두 마리 철없는 노루 새끼처럼
몸 달아, 하아 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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잉여의 시간 |
이곳에서 나는 남아돈다
너의 시간 속에 더 이상 내가 살지 않기에
오후 네 시의 빛이
무너진 집터에 한 살림 차리고 있듯
빛이 남아돌고 날아다니는 민들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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