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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전라도 구례 땅에는
비나 눈이 와도 꼭 겁나게와 잉 사이로 온다
가령 섬진강 변의 마고실이나
용두리의 뒷집 할머니는
날씨가 조금만 추워도, 겁나게 추와불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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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나날이 영글어 가던 호박에 입자국이 생겼다
분명 사랑의 자국은 아닐 터인데 무엇을 저토록 확인하고 싶었을까
아이의 뺨에 난 손톱자국 같다
잘 영근 호박으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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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골목의 눈치를 살피던 미화이발관이 소문 한 가닥 흘리지 않고 어디론가 떠났다
빙빙 돌던 삼색싸인볼 등에 업은 전봇대가 목 길게 뽑고 안부를 수소문하는 동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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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일주일에 두 번은 꼭 옷을 벗는다
보통은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이지만
어떤 날은 시도 때도 없다
팬티는 안 입고 있기가 일쑤다
손님이 지목하는 날이면
대낮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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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변솟길이 어지럽다 두엄자리 눈 녹이던
햇살이 이마빡에서 쩔쩔 끓는다
친구들은 구렁이 같은 암칡 목에 걸고
신났을 거다 낫으로 토막 낸 암칡
이빨로 쭉 찢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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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모자가 걸려 있다
중절모 바스크모 빵떡모 베레모
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
할머니 증조 할머니
외할머니 외할아버지
어머니 외삼촌
모자가 걸려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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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기러기 돌아오듯
꽃대 올라서며
여린 이파리보다 꽃이 먼저라 피어나고
동풍 불러 강물을 풀어서
연어 떼 모천으로 찾아들면
기러기마저 급하게도 알을 품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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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가장 높은 곳에 부푸라기 깃을 단다
오직 사랑은
내 몸을 비워 그대에게 날아 가는일
외로운 정수리에 날개를 단다
먼지도
솜털도 아니게
그것이 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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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나무토막같은
청춘을 살았다
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갔던,
거두절미 당한 벌거숭이는
어느 새 나무의
뼈가 되었다
숯으로 변한 나는
불 같은 사랑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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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사랑하는 사람아, 눈이 풋풋한 해질녘이면
마른 솔가지 한 단쯤 져다놓고
그대 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싶었다.
저 소리 없는 눈발들이 그칠 때까지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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