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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누군지 모를 너를 위하여’ |
내가 깊이 깊이 잠들었을 때,
나의 문을 가만히 두드려 주렴.
내가 꿈속에서 돌아누울 때,
내 가슴을 말없이 쓰다듬어 주렴.
그리고서 발가락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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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을의 끝 |
더 이상 시들 것 없는 벌판 속으로
바람이 몰려간다 풍찬노숙의
쓸쓸한 풀꽃 몇 포기 아직도 지지 못해서
허옇게 갈대꽃 함께 흔들리는 강가
오늘은 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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텔레비전 |
초인종이 울리고, 문득
그녀가 돌아왔다 저녁을 차려준다
오똑한 콧날 약간 붉은 금발
그녀는 샤워를 한다 냉장고에서
김치를 꺼낸다 계란 프라이를 한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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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계리 |
가도 가도 산뿐이다가
겨우 몇 평의 감자밭 옥수수 밭이 보이면
그 둘레의 산들이 먼저 우쭐거린다
제 몸을 가득 채운 것들을 신의 흔적이다,
라고 믿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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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화우 흩날릴 제 |
이화우(梨花雨)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
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
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
이매창(1573 - 1610)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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화엄사에 오르다 |
얼만큼 버려야 저 산처럼 조용할까
얼만큼 멀어져야 저 들처럼 편안해 질까
여기까지 오면서도 떨쳐 버리지 못한 욕망
가파르게 흐르는 물에다 떠내려 보내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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샤넬 No. 5 |
방학동 숲속에서 몰래 향수를 만들던 친구가
녹지대 불법건축물 단속으로 추방당하고,
친구의 비데오 제작사업을 인수받았으나
불량음반 단속법에 걸려 실패하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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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마뱀 |
한, 꼬리만 붙잡고
나 혼자 남았다.
斷指하듯 제 꼬리를 뚝,
자르고. 너도 독종이구나 야쿠자 도마뱀
힘께나 써 보이는 도마뱀
은근히 유혹하다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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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빔밥이 먹고 싶다 |
끼니 생각도 없어
그냥 누웠는데 발이 점점 시려온다
이불깃을 당겨도 숭숭 바람이 든다
속이 비어 그런가
찬밥덩이 물 말아 한 술 뜨는데
투 둑, 눈물방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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함께 누는 똥 |
감사히 먹겠습니다!
먹은 것은 다 똥으로 돌아간다
이 들에서 얼마나 많은 선조와 선임자가 똥을 눴을까
이 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물 안팎의 나이로 묻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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