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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느 해 가을 그리고 달밤 |
잠은 멀어만 가고 상처는 자꾸 되살아나
형수씨 주걱에서 옮아 묻던 정이나마
스미어 골수에 배듯 흥건하게 고인다
푸념도 길이 들어 개개풀어진 어린 것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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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시 만들기 |
비상 수단을 쓰기로 한다
비닐 봉지에 땡감을 담고
사과 한 알을 같이 넣어 봉한다
귀 기울여 들어보면
어리둥절한 사과와 땡감이
서로 무관심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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빗살무늬토기 |
한낮의 달아오른 태양이
거죽을 팽팽히 당겨
쏟아내는 무량의 빛살
그 먼 길을 날아오고도
한 치 흐트러짐 없이 쏟아지는 빛살들
온 대지에 꽂힌다
수백 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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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방촌 |
머지않은 장래에 창녀가 될 계집애를 끔찍이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. 피리 같은 골목을 지나, 다 쓰러질 것 같은 적산가옥 양지바른 시멘트 벽에 기대어, 지금도 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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낙원반점 |
막일을 하듯 여름이 지나면서
나는 자장면을 먹고 첫사랑과 헤어졌다
가고 오는 것도 일이라고
반쯤 남긴 면발이
질기고 길게 달라붙었다
간밤에 혼자 마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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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인자 (1941 - ) ‘붕어’ 전문 |
어항 속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헤엄치는 붕어
지느러미 길게 펄럭이며 세상을 보고 있어요
붕긋하게 내민 입을 어항 벽에 붙이고
둥그렇게 뜬눈으로 꿈꾸고 있네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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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어떠한 고역도 시련도 없이 성공한
사람들이 나는 두렵다
특히 그가 지도자가 되려 한다거나
굳이 예를 들자면
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다면
그의 당선에 반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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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해정 (1941 - ) ‘구부러진 못’ 전문. |
이민와서 첨 그린
벽에 걸린 그림
툭!
떨어지면서
함께 떨어진
구부러진 못
뇌경색으로 쓰러진
남편의 손톱을 깎는다
남편의 손가락도
병들고 녹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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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 아침의 시 |
외로움이 축복일 수 있다는 그대 口傳의 편지를 전해받고
사막 한 가운데 발을 접습니다
라플린
대협곡을 빠져나와 미친 듯 네 시간 차를 달리는 동안
눈 시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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까치골 - 경주 남산 27 |
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올 걸 그랬어
흔들리거나 흔들리지 않는
능선을 따라가다 보면
산으로 열린 시간들이 보이지 않는가
살아온 날들이야 그렇다 치고
살아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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