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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늙은 호박’ |
나이 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
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서 가야 한다고
말끝 흐리시는 친정어머니
열세 평 영구 임대 아파트
칠 갈라진 옥색 문갑 위에
경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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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온돌방’ |
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
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
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
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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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눈 내린 아침’ |
이십 년간 만나지 못한
아버지가 꿈에 보인다
마당 휑한 고향집
새벽에 눈 내렸다고
어서 일어나 눈 쓸란다
주먹만한 함박눈이
바람도 없이 쌓이는 밤
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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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다국적 똥’ |
또 배탈이군. 한때 돌조차 삭이던 위장이었는데. 그렇지, 장모가 전라도 배추를 경상도 고춧가루로 버무린 탓일 거야. 아냐, 맥도널드 햄버거에 우리밀 빵을 함께 먹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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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겨울 노래’ |
산자락 덮고 잔들
산이겠느냐.
산그늘 지고 산들
산이겠느냐.
산이 산인들 또 어쩌겠느냐.
아침마다 우짖던 산까치도 이제는
간 데 없고
저녁마다 문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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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사는 맛’ |
당신은 복어를 먹는다고 말하지만
그것은 복어가 아니다, 독이 빠진
복어는 무장해제된 생선일 뿐이다
일본에서는 독이 든 복어를 파는
요릿집이 있다고 한다,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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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한 지붕 세 가족’ |
A : 얘 사고 난 거 아냐?
B : 어유, 그 형이 사고를 내요? 형, 그 형 차 안 타 봤어요? 주행속도
평균 이십 킬로 미터야요.
C :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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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도루묵에 대하여’ |
삼척에 가서 도루묵을 먹었네
말짱 도루묵이란 말이 가슴에 사무쳐 먹었네
어쩌면 세상 일이 온통 말짱 도루묵이라는 생각이 들었네
‘잘나고 못난 것이 자기와 상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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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비밀’ |
아이가 걸어간다.
늦가을 과수원 한 귀퉁이
아무도 돌보지 않는 가지 사이로
한 알 붉은 사과를 찾아낸
탄성.
태풍에 스러져간 푸른 열매들의
영혼이
몇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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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어느 장례식’ |
아파트 주차장에서
이웃집 아주머니가 울면서
집으로 간다
아주머니의 뒤를 따라
아저씨가 집으로 간다
입술을 굳게 다물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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