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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삶은 감자 세 알’ |
사무실 건물 환경원 아줌마가 옥상에 감자를 심어 길렀다고 오늘 캤다고 뜨끈뜨끈한 주먹만한 감자 세 알씩을 사무실마다 돌리며 귀한 거니 잡수어보시라고 했다 세알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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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문득 소나기 쏟아지는 날이면’ |
50년대 혹은 60년대 지금보다는 많이 가난했던 시절
거리엔 비 오는 날에도
우산도 없이 다니는 사람들 꽤나 많았지.
문득 장대같이 빗줄기 굵어지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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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일주문 앞’ |
갈잎나무 이파리 다 떨어진 절길
일주문 앞
비닐 천막을 친 노점에서
젊은 스님이
꼬치 오뎅을 사먹는다
귀영하는 사병처럼 서둘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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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빵집’ |
빵집은 쉽게 빵과 집으로 나뉠 수 있다
큰 길가 유리창에 두 뼘 도화지 붙고 거기 초록 크레파스로
아저씨 아줌마 형 누나님
우리집 빵 사가세요
아빠 엄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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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가을의 기도’ |
가을에는
기도하게 하소서.
낙엽(落葉)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
겸허(謙虛)한 모국어(母國語)로 나를 채우소서.
가을에는
사랑하게 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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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삽질하는 새’ |
어린 새가 이제 막 배급을 받아
반짝이는 삽날을 잠시 살피다가
연습삼아 가볍게 몇 번 놀려본다
끄떡도 없는 허공
삽날에 붙어있는 약간의
불안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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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포란(抱卵)’ |
어미닭은 잘 아는 것이다
알을 얼마만큼이나 품어야 하는 것인지
또 알을 살그머니 굴리어주어야 한다는 것을
숨이 붙고 눈이 생기고 별 같은 입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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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슬픈 공복’ |
거기 늘 있던 강물들이 비로소 흐르는 게 보인다 흐르니까 아득하다 춥다 오한이 든다
나보다 앞서 주섬주섬 길 떠날 채비를 하는 슬픈 내 역마살이 오슬오슬 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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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안경, 잘 때 쓴다’ |
자기 전에 안경을 닦는다
책 속에 꿈이 있는 줄 알고
책 읽을 때만 썼던 안경을
총기가 빠져나간 눈에
열정이 빠져나간 눈에
덧눈으로 씌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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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아버지의 입김’ |
아버진, 도장밥 없이도 인감을 자알 찍으셨다
훅 부는 입김에 지난 날 인주찌꺼기가 살살 녹아
당신의 이름 석 자 요술처럼 그려지면
마치 실험에 성공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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