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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그늘’ |
그늘에서 말려야 하는 것이 있다
종이 한 장에서 오동나무 잎사귀까지
그늘에서 말려야 팽팽한 맛이 난다
온 생이 뒤틀리지 않으려면 먼저
바람 드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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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청빈한 나무’ |
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
받치고 섰던 하늘 더 멀리까지 내다보려고
나무는 누워서 이사를 간다
언제 했는지 이발을 하고
풀려서 너풀거리는 소매도 걷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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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여을’ |
설악을 잘 안다는 사람에게
설악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언제냐고 묻자
몸을 불리던 폭포 소리가 수척해지고
이파리 가장자리가 고요히 붉어지는
여을이라고 했지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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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청어의 저녁’ |
저녁 찬거리로 청어를 샀습니다.
등줄기가 하도 시퍼래서
하늘을 도려낸 것 같았습니다.
철벅철벅 물소리도 싱싱합니다.
정약전(丁若銓)은 어보(魚譜)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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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머리카락 줍기’ |
내 몸에서 내 몸이 떨어져 나간다
오늘만이 아니다
어제도 그저께도 그랬다
쥐들은
배가 파선할 기미를 채면 미리미리 바다로 뛰어든다는
그 이야기가 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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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지리산(智異山)’ |
나는 아직 그 더벅머리 이름을 모른다
밤이 깊으면 여우처럼 몰래
누나 방으로 숨어들던 산사내
봉창으로 다가와 노루발과 다래를 건네주며
씽긋 웃던 큰 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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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수몰지구’ |
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
서둘러 댐을 쌓았다
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
피해 주기 싫었다
막힌 난 수몰지구다
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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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유리창’ |
유리창 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나 평화로운가
노랫소리에 맞춰 가방을 멘 아이들은 총총히 학교로 가고
자동차들은 신호에 맞춰 멈춰 섰다 움직이길 반복하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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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석쇠의 비유’ |
꽁치를 굽든 돼지갈비를 굽든 간에
꽁치보다 돼지갈비보다
석쇠가 먼저 달아야한다
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꽁치인데
석쇠는 억울하지도 않게 먼저 달아오른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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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산수문경(山水紋鏡)’ |
자고 일어난 산이 거울을 보네
못물 가득한 논에 엎디어
제 얼굴을 보네
작년 봄 뻐꾸기 울 때 보고 지금 보네.
그새,
어떤 꽃은 아주 지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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