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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빨랫줄’ |
그것은, 하늘 아래
처음 본 문장의 첫 줄 같다
그것은, 하늘 아래
이쪽과 저쪽에서
길게 당겨 주는
힘줄 같은 것
이 한 줄에 걸린 것은
빨래만이 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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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동굴’ |
내가 굴이 된다면
눈 내린 깊은 산중
곰이나 호랑이로 치면 허리나 겨드랑이쯤
작지도 크지도 않게 자리 잡은 굴이 된다면
먼 옛날 티벳의 승려
차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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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벼랑 위의 생’ |
너무 늦게 왔다
정선 몰운대 죽은 소나무
내 발길 닿자
드디어 마지막 유언 같은 한 마디 던진다
발 아래는 늘 벼랑이라고
몸서리치며 울부짖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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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젖 물리는 개’ |
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
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
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
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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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자다가 웃다’ |
감기에 걸린 아들
곁에서
아들 손을 꼭 잡고 자다가
잠결에 보니
어느새 아들이
나를 꼭 껴안고 자는 것이 아닌가
여덟 살 아들의 뜨겁고,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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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이제 꽃피면 안되겠다’ |
소파가 꽃을 피우려는지 인조 가죽이 여러 갈래로 튼다. 갈라진 틈새로 노란 스펀지가 올라온다.
의자는 몇 해 전에 이미 꽃을 피웠다. 굵고 탄력 있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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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마른 저수지’ |
잔물결도 패거릴 지어 몰려다니면
죽음의 커다란 입이 되지요
번쩍이는 죽음의 이빨들이 되지요
석삼년에 한 번쯤 人肉을 삼키던 이 저수지는
백 년간 서너 차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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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빗소리는 아내의 기척처럼’ |
잠결에 듣는,
오랜 외출에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는 아내의 도마소리
지상에서 듣는 마지막 소리여도 좋을, 파릇파릇
도마를 건너가는 칼날의 탭
댄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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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닭’ |
이 산중식당에서는 직접 토종닭을 키운다.
좁은 닭장 구석구석 내몰리던 닭들,
다시 모이통 앞으로 쇄도하기 전 일제히 목을 뽑아 흔들어대던
대가리,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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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꽃이 지는 일’ |
살구꽃이 졌다
떨어진 꽃잎은 잊혀졌지만 꽃이 있던 자리는 점점 자라서
아이 울음만큼 자라서
직박구리가 목이 쉬어 떠났다, 가서는
다시 오지 않았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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