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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등’ |
우리는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
닿지 않는 등허리 한복판만큼
쉬 벗겨지지 않는 내밀한 허물
거기서 우리는 뒤틀린 등짝과 엉덩이와
언뜻 거울에 비치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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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’ |
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
꽃이 피고 소낙비가 오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
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
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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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,’ |
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
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
닭장 밑 두꺼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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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놀랜 강’ |
강물은 몸에
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
모래밭은 몸에
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
새들의 지문 위에
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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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구름 화실’ |
장마구름이 머릴 풀어헤치고 내려온다 그 발자국 소리에 놀란 개 짖는 소리 들리어 온다 길 하나 갉아 먹고 또 다른 산길 하나 꼴까닥 삼킨다 온 마을을 성큼 베어먹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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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굴참나무 술병’ |
와인을 처음 마실 때 코르크 마개를 딸지 몰라 애를 먹은 일이 있다
촌놈 주제에 아내 앞에서 분위기 좀 잡으려다 식은땀을 흘린,
그때 뽑다 만 코르크 마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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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순호 ‘구덩이’ |
웅웅거리며 구덩이를 파내려가는 포클레인
포클레인 없이는 하관식도 더디다고 품이 많이 든다고 조경책임자가 투덜거린다
나무 허리에 동여맨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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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성복 ‘관심을 끌기 위해서였다’ |
전에 고등학교 때 한참 정치에 꿈이 부풀어 있을 때,
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를 보냈다. 답장은 오지 않았다.
대학 갓 들어가 예술이니 사상이니 미쳐 있을 때,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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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현수 ‘물수제비’ |
말없음표처럼
이 세상
건너다 점점이 사라지는
말일지라도
침묵 속에 가라앉을 꿈일지라도
자신을 삼켜버릴
푸르고 깊은 수심을 딛고
떠오를 수밖에 없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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천수호 ‘그늘’ |
한 마리 이구아나다
10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등나무 숲
미끄럼틀이 밀어낸 아이가 말려 들어간다
발끝에 시달리던 빨간 공이 밟혀 들어가고
뒷골목 그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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