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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석류’ |
인사동에 나갔다가 리어카 위에 놓인 석류송이들을 보았다 매우 젊은 아가씨 서넛이서 아, 석류 좀 봐, 하면서 달겨들었다 석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이 민망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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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꽃은 배후가 있어 아름답다’ |
자목련 흐드러져 꽃그늘 깊은데
피막 같은 그늘 속으로 마음 밀어 넣다보니
그늘보다 더 까만 꽃의 배후가
툭 떨어진다
너의 정면은 꽃이다
나의 정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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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바이올린 켜는 여자’ |
바이올린 켜는 여자와 살고 싶다
자꾸만 거창해지는 쪽으로
끌려가는 생을 때려 엎어
한손에 들 수 있는 작고 단출한 짐 꾸려
그 여자 얇은 아랫턱과 어깨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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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아내’ |
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
부부가 있었어.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, 남편이 그러더래.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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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외출’ |
햇볕이 유리창에 착 붙어
온기가 전해지는 아침,
노인은 무릎에 파스를 붙이며
외출을 준비하고 있다
고무줄로 묶인 파스다발이
약상자에서 솔솔 냄새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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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이름’ |
데스밸리
이름이 무겁다
죽음을 이고 선 고인돌 같다 스톤헨지 같다
이 세상 생명치고 죽음의 받침대 없이
세워진 목숨 있는가?
꽃들이 명칭으로 아름다운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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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먼 산 먼 길’ |
어린 시절 텅 빈 마루에서 홀로 잠이 들면
호랑이 한 마리 산에서 내려와 나를 물고 갔다 한다
고요한 한낮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녘
깊은 잠에서 깨어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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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푸른 바닥’ |
깊은 산협
외딴집은 보이지 않고
길가 작은 논물 속
송사리 몇 마리 심심하다고
하늘은 구름장 내려놓고 가고
아이는 제 얼굴 벗어 놓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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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곰소에서’ |
나무로 덧대어 만든 커다란 소금 창고는 기울어져 있었다 평생을 물에서 오신 소금을 모신 곳이었으니 여전히 물이 들어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물이 들어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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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귀들’ |
두구동 연꽃지, 못 속에는 코끼리들이 산다
비바람 토닥이는 저 깊은 수면 위로,
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귀를 펄럭이는 코끼리들이여
귀들이 가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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