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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스위치’ |
이것은 일종의 정신이다
허리에 양손을 대고 좌우로 몸을 흔드는 이등병처럼
간단하고 절도 있게 눈을 깜빡이는 일이다
비행기가 빌딩을 들이박아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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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점성술이 없는 밤’ |
별들은 우리의 오랜 감정 속에서
소모되었다.
점성술이 없는 밤하늘 아래
낡은 연인들은 매일 조금씩 헤어지고
오늘은 처음 보는 별자리들이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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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투명인간’ |
아내와의 잠자리에서도
나는 없다
눈 뜨면 나갔다 해 지면 돌아오는
나의 집에도 나는 없다
어쩌다 성원이 된 모처럼의
가족들간의 식사에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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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공손한 손’ |
추운 겨울 어느날
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
사람들이 앉아
밥을 기다리고 있었다
밥이 나오자
누가 먼저랄 것 없이
밥뚜껑 위에 한결같이
공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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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소각장 근처’ |
달아난다. 화분이, 의자가, 약봉지가, 꽃들이
꽃 같은 약속이, 읽지도 않은 책들에 바통을 넘긴다
숨을 헉헉거리며 허공으로 달아난다
연기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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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워낭소리’ |
너를 잃어버리고
내 어린 하늘은 자주 무너졌다
온 식구가 찾아 나서고
온 마을이 찾아 나서던 너는
어두운 숲 가운데 묵상으로 서 있거나
낯선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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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과수원 시집’ |
봄 과수원에
파릇파릇 돋는 저것은 풀이 아니다
노랗게 발갛게 피는 저것은 꽃이 아니다
바람에게 물어봐라
햇빛에게 물어봐라
대지를 물들이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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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나는 날마다 야구경기를 모니터한다’ |
모니터 위에는 새벽마다 올라오는 데이터
어젯밤에는 휴스턴과 필라델피아가 이겼다
미네소타와 디트로이트는 연패를 벗어났다
가끔씩 에러도 나지만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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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내리’ |
마음 속에 담아 둔 마을 하나 거기 있다.
골짝마다 둥지 같은
작은 집들 틀어 두고
머물러 늘 들여다 볼
웅덩이도 몇 파놓고
큰 길 옆에 작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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‘자갈치의 달’ |
땅바닥에 내려앉아
철퍼덕, 엉덩이를 뭉개고 앉은 달
손 내밀면 가슴까지 무너져
사람 소리를 한다
자갈치아지매 비릿한 전대 속
부새비늘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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