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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나무와 새 / Linda Gregg |
늦은 밤
42가 지하철 역에서.
시내 기차를 기다리며
플랫폼을 오간다.
적선을 할 힘조차 없다
잡지 판매대의 책 표지를 응시하고 있는
내 뒤를 누군가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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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파 비파 비파를 켤 때 / 권현형 |
강남 한 복판에서 생각이 비파나무 젖은
잎사귀처럼 너울거릴 때가 있다
비파, 비파, 비파, 본 적도 없는 악기를 켤 때가 있다
비가 오니 내가 멀리 있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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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감도 몇 개 없는 화가 / 테드 쿠저 |
바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
작은 별장에서 생을 보낼 수 있다면 좋을거야
아침이면 차고, 축축한 바위에서 그림을 그리는,
로컬 아티스트가 된다면, 기분 좋은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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밤벚꽃 / 고영민 |
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
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
당신을 업고
천변에 나옵니다
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
얌전히 업혀 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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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전기 / Barton Sutter |
불은 꺼진, 그래, 옛사랑이여
빨래방에 가면 그대가 몹시 그립네
그대의 도움 없이 시트를 개는 것은
쉬운 일이 아냐. 나 혼자 끌고 당기고,
그대 손을 당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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봄밤 / 황동규 |
혼자 몰래 마신 고량주 냄새를 조금 몰아내려
거실 창을 여니 바로 봄밤.
하늘에 달무리가 선연하고
비가 내리지 않았는데도
비릿한 비 냄새.
겨울난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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행복 / Wesley McNair |
여동생의 투도아 자동차, 뒷좌석에 앉은 다트
검버섯 핀 손으로 관절염이 없는 왼쪽 발목 쪽으로
큰 몸을 기울이며 왜? 나를 이렇게 웃겨서
도로 주저앉게 하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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목련꽃도 잘못이다 / 윤제림 |
춘계 전국야구대회 1차전에서 탈락한 산골 중학교 선수들이
제 몸뚱이보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,
목련꽃 다 떨어져 누운 여관 마당을 나서고 있다.
집으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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겨울기도 / 마종기 |
하느님,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
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
잊지 않게 하시고
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
고마워하게 하소서
겨울에 살게 하소서
여름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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손님 / Patricia Fargnoli |
여름이면 이모네 여관에 와
이 주일씩 머물던 프랑스 여자
긴긴 7월의 저녁, 그녀는
나와 동생을 보트에 태우고
드넓은 호수 한 가운데로 노를 저어갔었지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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